문헌과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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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청학동'을 꿈에도 잊지 못할 마음의 고향이라 하여 인간이 추구하는 이상향으로 여겨왔었다.
    '청학동'에 대한 결론과 기록된 것이 많은데 대강 기술하면 다음과 같다.
    '동국설립'에 '천하에 삼대 '명산'이 있으니 '기산'과 '곡부'(중국지명) 그리고 '청학동'이다.'
    하였고,동국 삼동중에 세상을 기다리는 보배가 청학동이다 하였으며, 옥룡자께서는 삼승지지에서 제일지가 청학동이다 하셨으며 영평대신도본에 '동방의 제일지요 왕기의 제일지다.' 라고 하였다.
     
    또한 "윤거산, 유산기"선생께서는 '우리 동방의 으뜸이라' 하셨으며, 무학대사께선 '비록 적은 나라에 있으나 중화(중국)보다 났다. 나라로 더불어
    한가지로 한다.' 라고 하셨으며, 도선국사와 일지승은 청학동을 칭찬하길 '진주재를 넘어 청학동에 이르니 정말로 평생에 처음보는 땅이다. 청학의 인걸과 높고 낮은 산맥등을 또한 천하의 큰 보배다.' 라고 까지 했다. 지리산 '산세편'에도 지리산에 12동천의 명승지가 있는데, 그중에서 청학동이 제일이고 다음이 화개, 악양, 덕산등으로 되어있다.
     

     

      기타 '동국여지승람', '경남여지', '집성', 이인로의 '파한집', 이수광선생의 '지붕유설', 이중환 선생의 '택리지'등 청학동에 관한 많은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위에 기술한, 이른바 청학동에서 실제로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것은 지금으로부터 약3백여년전 부터라 하고 특히 외정(倭政)때 왜정을 반대한 선사들께서 피난해 모여 산것이 110호 정도라 하는데, 우연이랄까?
    6.25후 지리산 공비소탕으로 인해, 일시에 그 마을이 없어지고, 그 뒤로 갱정유도(更正儒道)를 신봉하는 현 청학동 주민들 30호가 모여 옛 모습을 고수하면서 선현들의 얼과 전통을 계승하며 수도 정진하고있다.
    아울러 현세에 결핍된 윤리도덕, 인성, 예의범절 등을 서당을 통해 교육, 양성하고 있으니 청학동이란 이름에 명실상부한 것이 아닌가 한다.